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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한 마리 용, 짜장면 앞에서 눈을 뜨다

구룡포, 과메기, 시, 그리고 하남성반점, 전통과 현재 연결하는 징검다리

등록일 2025년06월18일 10시0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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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 이 작은 어촌마을의 이름에는 오래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열 마리 용이 하늘로 승천하던 중 한 마리가 바다에 떨어졌고, 그 자리에 생겨난 포구가 바로 '구룡포(九龍浦)'다. 
 
아홉 마리의 용과 하나의 포구. 이 신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한 마리 용은 땅에 남아 또 다른 전설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바다를 지키던 그 용은 겨울바람에 말려지는 생선 한 마리로 다시 태어난다. 
 
그 이름이 바로 ‘과메기’다. 이제 과메기는 단순한 겨울 별미를 넘어 구룡포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문학이 함께 깃든 상징이 되었다.
 
이 과메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서정시인 양광모다.

그는 구룡포의 바람과 시간, 그리고 마을의 생존방식을 시로 포착해냈다.

시 「구룡포 과메기」는 과메기의 유래를 ‘열 번째 용’이라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며, 전통과 현재를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구룡포 과메기」 中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청어로 만들었다
과메기는 내장도 떼지 않고 통째로
대나무 소쿠리에 널어
차디찬 겨울바람에 말렸다
… 
구룡포에서는 과메기가
열 번째 용이라고
그 겨울바람의 길이를
내장과 함께 말려낸다
 
 
이제 과메기는 단순한 겨울철 별미가 아니다. 그 속에는 시인의 상상력과 마을의 생명력, 그리고 세월을 견뎌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이 '열 번째 용'은 또 한 번 시인의 시선 속에서 깨어난다.
 
이번에는 짜장면 한 그릇 앞에서다. 구룡포 읍내에서 90년의 세월을 지켜온 하남성반점. 1934년 ‘동화루’로 문을 연 이 노포는 중화요리의 향기 속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쉰다.

하남성반점의 주방에는 무려 60년째 불 앞을 지켜온 조태래 사장이 있다. 
 
그의 손끝에서 볶아진 면발과 불향은 한 시대의 기억을 음식으로 전한다. 양광모 시인은 이곳에서도 시를 길어 올린다.
 
「구룡포 하남성반점」 
 
1934년 구룡포 최초로 문을 연 중국집 동화루,
열다섯 살 주방보조로 시작했다
 
하남성 반점으로 이름을 바꿔
중화요리를 만들어온 지
어언 육십 년, 
마흔을 갓 넘긴 아들도 뜻을 모았다
 
구십 년 역사의 호흡이 느껴지는 
노포(老鋪)에 앉아
짜장면, 짬뽕, 탕수육의 독특한 맛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량주 한 잔을 반주로 곁들이면
서기 712년, 하남성에서 태어난 
시성 두보의 목소리가 
호미곶 호랑이의 포효처럼 들려온다
 
"시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거든 죽어서도 쉬지 않으리라(語不驚人死不休)"
 
하남성 반점 주방 저 안쪽,
분주히 오가는 손끝을 통해 
장인의 혼을 음식에 불어넣고 있을 
조태래 사장의 형형한 눈빛에도 
시 한 수가 별처럼 반짝이려니
 
"음식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거든 죽어서도 쉬지 않으리라"
 
내 어찌 이런 별미를 혼자서만 입에 넣으랴
이제 곧 하남성 반점을 다시 찾는 날엔
반드시 이태백을 동행하리라
 
이처럼 양광모 시인은 구룡포의 노포를 문장으로 되살려낸다. 그의 시는 한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전설과 일상을 촘촘히 엮는다.
 
양광모 시인의 「구룡포 과메기」와 하남성반점의 짜장면과 같이 스토리가 버무려져 하남성반점의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과메기의 진귀한 풍경도 확인해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다. 
 
60년 전통의 장인 솜씨에 끌린 것일까, 아니면 중화요리의 깊은 맛에 마음을 내어준 것일까? 보는 이로 하여금 입맛을 다시며,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흥미롭게 느껴질 정도이다. 
 
시로 되살아난 마을, 구룡포. 양광모 시인은 서정적인 언어로 삶의 고비마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사색을 건네온 시인이다.

그의 시집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 등은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수능 필적확인 문구로도 선정된 시 「가장 넓은 길」의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이 구절처럼, 구룡포 역시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는 길이 된다. 그 길 위에는 과메기와 짜장면, 그리고 시가 놓여 있다.
 
음식이 시가 되고, 시가 전설을 깨운다. 과메기의 바람, 짜장면의 불향, 그리고 시인의 문장 속에서 떨어진 한 마리의 용은 오늘도 살아난다.

그 용은 더 이상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 대신 구룡포의 거리와 사람들, 그리고 시가 된 풍경 속에서 조용히 눈을 뜬다.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그릇의 짜장면을 맛보는 순간. 우리는 구룡포라는 오래된 마을의 전설을, 또 한 번 마주하게 된다.[조이태 객원기자,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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