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갈 기회가 생겨 통일독일의 상징이였던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 주변을 돌아 보았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 통일이 임박할 때 동서독 총리가 만나 악수를 나눈 자리이기도 하고, 통일 되던날 많은 인파가 몰려가 통행금지 된 문을 개방시켜 주목 받기도 했다.
그런 유명세로 인해 이제는 베를린 방문시 꼭 찾아가는 필수 관광지가 됐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했을 당시 이 문을 통과하며 독일인들의 사기를 꺾었다.
실제 나폴레옹은 브란덴부르크 문 꼭대기의 4두마차 조각상을 파리로 가져가기도 했다.
이후 프로이센이 승리하면서 다시 이 문은 게르만(German/아리안족:금발에 파란눈, 큰 체격을 가진 종족)민족의 힘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됐다.
1,2차 대전에서 독일군은 승전의 깃발을 이곳에서 휘날렸다. 따라서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인(게르만 민족)의 힘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이런 장소가 2차 대전에서 패하면서 동, 서를 가르는 분단의 문으로 바뀌었다.
또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2차 대전 승전국들이 이 문 주위에 대사관을 세워 독일인들의 기를 꺾어 버렸다. 러시아는 대사관 외에도 가까이에 소련군 전승기념비까지 세웠다.
실제 그곳에 가 보니 미국 대사관은 거의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바로 들어서 있었다.
서구 사람들도 동양처럼 풍수지리설(기가 흐르는 중요 지점을 막아 버리면 그 민족은 융성하지 못한다/일본이 우리나라의 산에 쇠말뚝을 박고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운 것 등)을 믿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독일인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사관과 전승비를 세우고 동-서로 문을 갈라 막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기어이 통일을 이루었다.
언젠가 이 문 앞에서 독일인들이 다시 깃발을 휘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우려와 두려움도 밀려왔다.
미국 대사관 앞에는 유대인 학살을 상징하는 홀로코스트 기념비 공원(관을 상징하는 대리석 조각)도 조성돼 있었다.
나는 독일이 2차 대전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이 문 주위에 대사관과 홀로코스트 상징물을 세우도록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코스트 상징물은 독일 지식인 사회가 먼저 제안한 뒤 모금을 통해 성사됐다고 하니 2차 대전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인들의 참회와 반성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독일인 가운데는 여전히 극우파가 존재하고 나치주의가 암암리에 활개를 치고 있지만 분명히 일본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만약 일본이였다면 스스로 참회의 상징물을 세우지도 않았겠지만 수도(도쿄) 중심에 2차 대전 희생자의 위령비나 위안부 동상을 세우도록 그들이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서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면서도 통일을 이룬 독일인들의 저력이 세삼 새롭게 다가 왔다. (조영준의 여행 다이어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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